조국을 떠나 이국땅에 발을 디디기는 이번이 처음이라 난 무척이나 설레었다. 마치 유년시절 소풍을 가기 전날 그렇게도 설레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처럼 난 과거로 돌아가 다시금 어린아이가 된양 붕붕 떠 있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일주일 동안 난 일본에 대한 여행가이드 책도 사고 이것 저것 많이 보긴 했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짧은 시간에 알기에는 너무도 불충분했기에 미리 미리 알아둘걸 하는 후회감을 안고 출발하는 날까지 꺼림찍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드디어 우리의 출발일.
광주에서 늦은 밤에 출발하여 서울에 도착하니 새벽 4시쯤이 되었을까? 김포공항에서 일행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가까운 해장국집에서 간단히 요기를 채우고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 그러나, 문은 아직 열기 전이었고 우리는 밖에서 날이 밝아오는 것을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은 지루했지만 곧 열린 문으로 들어가 일행을 만났고 우린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인천공항에서도 한참동안 이것 저것 준비할 일이 많았다. 처음 뵙는 분께 인사도 나누고 단체티도 하나씩 받아 갈아입고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다가오는 일본 여행이라는 것 때문에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물론 일본에 가는 것이 동경축제에 참여하려는 큰 목적이 있지만 그래도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내 가슴속에서 지울수 없었기에 지루한 긴 시간이 마치 짧게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우린 출발했고 1시간 조금 넘게 걸려서 가까운 섬나라 일본에 도착했다.
첫발을 디딘 곳은 나리따공항.
우리의 날씨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조금 더 습기가 있는 것 같기도 한 후덥지근한 여름날씨.
지금 기억해 보면 일본에서의 11박 12일은 무척이나 덥고 후덥지근했던 기억이 물씬 난다.
일본의 집들은 평수가 무척 좁다는데 에어컨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우리 숙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우리는 간단한 복장을 한 후 쇼핑을 나섰다. 그러나, 서울보다 복잡한 지하도 구조때문에 난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물론 나의 일행또한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즐겁고 행복한 일본의 첫날이었다.
다음날부터 일본속의 한국처럼 김치와 김과 국이 풍성한 아침을 먹은 후 사진기와 간단한 가방 하나만 메고 여행을 시작했다. 정해진 목적지는 없었지만 지하철 티켓 끊는 앞에서 가이드 책자를 보고 결정하고 차표를 끊은 후 지하철을 타고 또 다시 그곳에서 우리가 갈 곳을 결정하는 무계획적인 여행이었지만 그런데로 재미있었다.
여행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 주고 더욱 더 친근하게 해 주는 매력이 있나보다.
전까지 얼굴한번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금새 친한 친구가 되니 말이다.
동경국립박물관, 아름다운 호수 시노바쥬, 아사꾸사, 비둘기천국인 우에노공원, 일본인의 명문대학 동경대학 등 첫날의 일본여행은 너무도 즐겁고 인상깊었다.
그런데 내가 편하게 신으려고 지하상가에서 사 간 저렴한 운동화가 화근이었다. 새 운동화 밑창이 우에노공원에서 떨어진 것이 아닌가... 덜렁덜렁...
창피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점심으로 우동을 먹으러 갔던 소바 집에서 주인아주머님께 끈을 달라고 손짓발짓 바디 랭기지로 했더니 금새 알아듣고 와서 정말 완벽하게 매주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다시 일본에 가면 그곳에 꼭 한번 다시 들리리라.
셋째날, 하꼬네에 갔다. 오와꾸다니 계곡에서 먹은 까만 달걀. 7년을 더 산다하여 500엔을 주고 6개를 샀다. 욕심은 났지만 인명은 제천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열심히 나눠 먹었다. 착한 일을 하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해서... 너무 깜찍한 생각이었나?
아름다운 아시노꼬 호수.. 그곳에서 만난 일본인 가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귀엽고 천진한 일본아이들. 그리고 예의바르신 어머님.
넷째날은 웅장한 하꼬네와는 다른 분위기의 아름다운 닛꼬에 갔다. 동조궁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져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간의 처세술을 빗대어 만들어 놓은 '신자루'라는 세마리의 원숭이모습이다.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듣지 않는다라는 인간의 처세술. 마치 우리나라의 며느리는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장님 삼년이라는 말과 어쩌면 그렇게도 딱 맞을까?
다섯째날은 광주일행끼리만 여행을 하였다. 우리가 간 곳은 도꾜도청사. 초행인지라 길을 찾기가 너무도 어설퍼 고민끝에 한 아주머니께 여쭈어 보았는데 글쎄, 자신의 일도 뿌리치고 우리와 10여분동안 동행해주셨다. 우린 너무 고마워서 정선생님께서 가지고 오신 예쁜 차수저를 선물로 드렸다. 그 때 성함이라도 알아두고 연락처라도 받아둘껄. 너무 안따깝다. 나의 일본여행은 이런 친절하고 고마운 분들 덕분에 더 없이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래.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
드디어 여섯째날. 동경과학축제가 시작되었다. 많은 실험부스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화석표본 만들기 부스였다. 내 전공이 지구과학이라서 그런지 왠지 자꾸만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것 같다. 인상깊었던 것은 나이가 많이 드신 지질학교수님께서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모습이었는데 용기를 내어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로 떠듬떠듬 이야기도 나누고 선물로 오리지날 암모나이트도 받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받아 오는 것을 보고 조금 서운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기억이었다.
장장 5일에 걸쳐서 치뤄지는 동경과학축제.
평교사뿐만 아니라 대학의 교수님들. 그리고 퇴직하신 전직 선생님들께서도 이런 축제에 함께 동참하는 것을 보면서 난 너무도 많은 것을 느꼈고 우리도 보고 배워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현직교사분들도 자신의 전공영역에 한해서는 그들만의 노하우를 발전시키고 있었고 내가 궁금한 사항을 물었을 때 자신있게 이것 저것 보여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모습은 내 가슴속 깊히 새겨졌다.
어디서나 사람들은 인연을 맺게 되는가 보다.
카카오에 관련된 실험부스를 운영한 한 일본고교 아이들과 친해져서 헤어질때 무척이나 많은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나고 우리가 발표한 부메랑 부스에 매력을 가진 어떤 꼬마 아이가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와서 우리를 함께 도와주었던 일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되었다.
일본에게도 우리가 배워야 할 장점들이 있다.
먼저, 허세를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생활하는 솔직담백함.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는 마음, 축제때 보여주었던 자신의 영역에서의 자신감과 끈질긴 노력.
자연이 준 아름다움을 이용하여 그들만의 명소를 만들 수 있었던 창조력.
얼굴은 궂어 있고 차갑게 보이지만 누구에게든지 친절하고 상냥한 마음씨 등은 배워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우리 나라. 우리 조국.
우리라는 말이 정감있듯이 난 이곳이 좋다. 그러나, 일본과의 첫만남은 행복했고 기억에 언제까지나 남을 것이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머니.
무슨 말이냐구요? 돈이 모자라서 집에 전화도 하지 못할 뻔 했던 나의 눈물겨운 동경기.
그래도 행복했던 11박 12일.
웃음과 소박함, 상냥함이 넘쳐나던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라.